비와 꽃가루
2004/05/03 20:22
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. 모든 것들이 땅에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는 듯 하다. 비는 나도 어쩔수 없는 동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. 비가 내리면 모두 제 은신처에 웅크리고 앉아 쉬는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. 하지만, 나는 나름대로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영장류인 동시에 고도성장한 한국사회의 한 구성원이기에 비가와도 마냥 쉴 수 만은 없다. 애석하게도 나 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다. 그래서 그렇게들 우울해 하나보다.
오늘 같은 날은 뭘해도 잘 집중이 되지 않는다.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쩔수없이 그렇다.
나는 차 안에서 빗방울이 차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를 좋아한다. 오죽하면 운동장에 근무할때 비가 오는 새벽이면 차에 앉아서 라디오를 들으며 하염없이 앉아있곤 했다. 하지만, 오늘 비는 부슬비라서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. 대신 손석희의 시니컬한 목소리가 내 아침을 가득 채웠다.
내가 비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기해서이다.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게 난 매번 신기하다. 땅에 있던 물이 증발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게 다시 모여 물이 되어 떨어지는 것이다. 이건 당연한거지만,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닌 것이다. 난 신의 존재를 믿진 않지만 신의 능력은 존경한다. 시스템 설계자로서의 신의 능력은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. 꽃가루를 날려서 수술과 암술을 만나게 하는 재미있는 방식을 내가 과연 생각해 낼 수 있을까.
오랜만에 내 생각이 들어간 글을 쓰려니 꽤나 어렵다. 요새는 텍스트의 홍수라고 할만큼 글이 참 쉽지만 원래 글이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. 하지만, 쉽게 생각해야 쉽게 글을 쓰지 않겠는가. 그동안 나는 글쓰기를 너무 어려워했으니까 말이다.
─ tag 하루키처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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